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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나는 타로 및 오라클의 인격화/신격화를 믿지 않을 뿐더러 전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덱마다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 덱을 만든 작가의 세계관, 사고방식, 그리고 그림의 소재가 된 문화적 배경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
1. 하모니어스

한 번 타로 공부를 하려고 했다가 모종의 이유로 그만둔 적이 있었는데, 그 후 다시 관심이 생기면서 들인 첫 번째 덱. 그러니 사실은 두 번째로 소장하게 된 덱이지만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건 이 덱과 함께이므로 첫 덱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일단 여러 리뷰들에서 보이듯이 하모니어스는 관계운을 보는 데 좋은 것 같다. 그런데 이 때 관계운이란 단순히 좁은 의미에서 연애 관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넓은 시야에서 인간관계를 조망해준다는 뜻이다. 즉, 어떤 질문으로 리딩을 해도 해당 상황 속에 얽혀 있는 인간관계의 본질이라든가 사람들의 심리 같은 것을 콕 집어서 지적해준다. 이 말의 뉘앙스에서도 알 수 있겠지만 하모니어스를 쓰면서 느낀 점은, 유려한 그림체와 부드러워 보이는 인상과 달리 굉장히 풍자적이고 날카로운 덱이라는 것. 앞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타로의 인격화/신격화를 반대하므로 이것은 이 덱이 어떤 인격체로서 그런 성격을 가졌다는 뜻이 아니라 이 덱의, 혹은 이 덱을 만든 사람의 세계관 자체가 상당히 시니컬하고 풍자적이라는 뜻이다. 이를 느낄 수 있었던 대표적인 카드가 메이저 7번 전차와 마이너 중 코인 9번(전통적인 이름은 펜타클 9번) 카드였다.


작가가 성악설 내지 성무선악설을 지지하는 입장 아닐까 싶다.
그래서 초창기에 막 타로에 대해 기초적인 공부를 할 때 열심히 사용하다가 점점 이 덱의 예쁘지만 시니컬한 모순에 놀라게 되면서 잘 사용하지 않게 되었었다. 그런데 점점 많은 덱들을 접해볼수록 냉철하게 말해주는 덱의 소중함을 알게 되어서(?) 다시 하모니어스를 많이 찾게 되었다. 비록 좀 더 시니컬하긴 하지만 유니버셜 웨이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표현 방식도 편하게 펼쳐볼 수 있게 하는 장점이다. 그리고 냉정하긴 해도 마냥 부정적으로 말해주는 건 아니라서 지금도 대인관계에 관련된 질문을 리딩할 때는 일단 하모니어스에 손이 가는 편이다.
2. 크리살리스

정말 좋아하고 좋아하는 덱. 그림, 카드 재질, 컨셉, 내용, 상징. 뭐 하나 아쉬울 게 없는 덱이다. 만약 덱을 모두 처분하고 단 하나만 남겨둔다면 크리살리스를 택하고 싶을 정도로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필요할 때에 따뜻한 조언들을 많이 해주어서 더욱 그런 것 같다.
이 덱의 장점은 넘치고 넘치지만 하나를 필히 꼽자면 뒷면이 아름답다는 점도 있다. 나는 사실 뒷면에 대해서는 그리 크게 신경 쓰는 편이 아닌데 크리살리스 덱의 뒷면은 정말 내 취향 그 자체다. 아름다운 변형의 나비...:)
크리살리스는 뭐랄까, 굉장히 깊이 있는 덱이다. 개인적으로 일상의 자질구레한 문제들을 가지고 리딩하는 것보다는 문제의 근원이 되는 심리적 부분에 대해 건드려주는 데 탁월한 것 같다. 상황에 대해 단언하기보다는 곁에서 애정을 가지고 조언해주는 수호 요정 같은 느낌. 웨이트 계열과 매우 다른 이미지/표현들이 많아서 해설서나 덱북 참고가 필수인데 이 해설서나 덱북조차 기본적으로 따뜻하고 격려하는 듯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카드를 다루며 힐링 받는 느낌을 경험하고 싶다면 크리살리스를 조심스레 추천하고 싶다. 왜 조심스레냐면, 이 덱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처럼) 민속 전통이나 신비주의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워낙 덱이 담고 있는 배경지식이 방대해서 압도 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현재 덱북을 1/3 정도 번역하다가 멈춘 상태인데, 처음 들어보는 용어들이 계속 쏟아져 나와서 소장한 모든 덱 중에서 가장 번역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들었던 덱이기도 하다.ㅠ_ㅠ
하지만 반대로 바꾸어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이 덱이 그만큼 탄탄한 기반 위에 만들어졌다는 뜻도 된다. 문화, 전통, 의례, 민속, 인류학 등에 대한 지식욕이 있는 내게는 감히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 덱 :)
3. 폴리나

나의 엄밀히 말해 진짜 첫 덱이었던 폴리나. 모종의 이유로 처분했었지만 완전히 초보자이던 시절에 대한 향수(?) 때문에 다시 들이게 된 덱이다. 무척이나 독특하고 기묘하면서도 아름다운 그림 스타일 때문에 그 초보자 시절에도 첫 덱으로 무얼 들일지 하모니어스와 놓고 치열하게 고민했던, 처음으로 반한 타로 덱이기도 하다.
일단 이미지에서 볼 수 있다시피 무척이나 몽환적인 느낌의 덱이다. 덕분에 리딩을 하다 보면 '그래서 뭐라는 거야?' 싶었던 적이 많았지만 때로는 정말로 정확하게 상황을 짚어주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창조성과 관련된, 예를 들어 글을 쓴다거나 무언가를 만든다거나, 그런 창조적인 작업들과 관련된 리딩에 제일 적합한 덱이라고 느껴진다. 그 외의 분야에 대한 리딩은 '현재 상황'을 정리해서 보여주는 데 능숙한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폴리나로 관계운을 보는 것은 글쎄...... 단적으로 말해 힘들었다. 왜냐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경험에 불과하겠지만, 폴리나는 기본적으로 (최소한 나의) 인간관계에 대해 부정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여기서 부정적이라는 말의 의미는 하모니어스가 쓴 소리를 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 다시 말해 하모니어스가 리딩할 때 "네가 이런 마음으로 이렇게 했으니까 결국 이렇게 된 거지."라든가 "겉으로는 좋아보이지? 하지만 그 이면은 어떨까?" 같은 느낌이라면, 폴리나는 "넌 안 돼. 어차피 안 돼. 망했어, 망했어!" 이런 느낌. (반복해서 이야기하지만 나는 타로나 오라클의 인격화/신격화에 전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이다. 앞의 설명은 그저 이해를 돕기 위한 과장일 뿐.)
그 외에도 U.S. Games사 치고 비교적 불친절한 해설서(LWB)가 아쉬운 덱.
4. 쉐도우 스케이프스


유려하고 섬세하며 몽환적인 그림체가 눈길을 잡아끄는 덱. 해설은 한 편의 요정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때문에 모호하게 느껴질 수도 있어서 호불호가 갈리는 덱. 이 덱을 아예 아트 덱으로 치부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쉐스는 개인적으로 내게 아주 특별한 덱이다. 이 덱에 관해 쓰고 싶어서 이 포스팅을 기획했다고 해도 좋은데, 그 이유는 처음으로 'resonance(공명)'이란 걸 느낀 덱이기 때문. 종종 다른 덱들은 처음 카드를 펼쳤을 때 그 의미가 바로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고 한참을 고민하고 추론한 끝에 답에 도달하게 되는 경우들이 있는데, 쉐스는 신기하게도 언제나 카드를 보자마자 왜 그 카드를 내게 보여주는지 곧바로 알 수 있다. 내게 주는 메시지, 의미가 바로 파악이 된다. 아름다운 그림과 나름대로 풍부한 상징 뿐 아니라 이런 특별한 점 때문에도 아낄 수밖에 없는 덱. 쉐스를 가지고 작업을 하면 할수록 겉보기보다 훨씬 더 깊이 있는 심리적 통찰을 내포하고 있는 덱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에서 덱을 하나만 남겨둔다면 크리살리스를 남겨둘 거라고 했었는데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쉐스까지 두 개의 덱은 꼭 남겨두어야 하니까. :) 그 정도로 좋아하고 신뢰하는 덱이다.
5. 프리즈마 비전

고흐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 독특한 스타일의 표현과 빛나는 은박 길딩, 그리고 수트 별로 쭉 늘어놓았을 때 파노라마 형식으로 이어지는 마이너 아르카나로 인해 무척이나 유명한 덱. 내가 처음으로 덜덜 떨면서 구입했던 나름 고가의 덱이기도 하다.^^; 아직도 이 덱의 가격 장벽(?)을 넘어가는 덱은 나의 수중에 없다. 해외 사이트 장바구니에 계속 담겨 있는 Sasuraibito tarot나 Ophidia rosa tarot를 직구한다면 그 장벽을 훌쩍 넘겠지만.ㅎㅎ
솔직히 말하면 내용에 대해서는 그렇게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오로지 표현 양식&관점의 독특성과 덱의 사양이 마음에 들어서 구매했는데 실제로 리딩을 해보면서 놀란 적이 많았다. 굉장히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내용들을 많이 담고 있어 충분히 깊이를 지닌 덱이다. 특히 메이저 아르카나는 웨이트와 유사하면서도 재구성된 부분이 많은데, 웨이트의 자질구레함을 덜어내고 핵심만을 은유적으로 그려냈다는 이미지이다. 이 덱의 강점은 좀 더 단순명료하면서도 깊이 있는 조언을 제시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다른 심리학적 성찰에 특화되었다고 일컬어지는 덱들과는 달리 프리즈마 비전의 메시지는 좀 더 단호하고 날카로운 느낌이다. 마냥 긍정적이고 따뜻하진 않다. 프리즈마 비전을 메이저 아르카나 한 장으로 나타내라고 한다면 나는 아마 '정의' 카드에 비유할 것 같다. 적어도 이 덱은 내게 있어 그런 인상을 준다.
매우 좋아하지만 함부로 꺼내들지는 않게 되는, 오묘한 덱.
6. 오쇼 젠

명상용 덱으로 유명한 오쇼 젠. 타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그 이름을 여러 차례 들어봤을 것이다. 과연 명성답게 아름답고도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명상적인 그림들이 가득하다. 해설서는 오쇼 라즈니쉬라는 선 불교 쪽의 현자가 남긴 메시지들을 각 카드의 내용에 맞게 모아놓은 것이다.
오쇼 젠은 사실 실물로 들이기 전에 먼저 인터넷에 나와 있는 해설 자료를 보고 필사를 먼저 했던 덱이다. 거의 매일 하루에 1-2장 정도를 필사했는데 개인적으로 인고의 시기에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마음을 가라앉혀 주기도 하고, 새로운 관점을 통찰력 있게 제시해주기도 해서 덱을 들여야겠다는 갈망이 커졌던 것 같다. 정작 덱을 실물로 들이고 나서는 뽑아놓은 카드가 주는 메시지가 조금 거리감 있게 느껴져서 현재는 살짝 소원해졌지만.......
그래도 타로 계에 한 획을 그은, 좋은 덱임은 틀림없다. 명상용 덱을 찾는다면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대상. 오쇼 젠으로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일반적으로 많이 묻는 관계운, 직업운, 금전운, 건강운 등등)를 다루시는 분도 봤는데 나는 많이 부족한 단계여서인지 그렇게는 사용이 잘 안 되는 것 같다.^^; 주로 마음을 살피고 문제에 대한 관점을 전환하는 데 있어 조언을 얻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
7. 가디스(U.S. Games)

개인적으로 이 덱의 작가인 크리스 왈더의 그림체를 무척 좋아한다. 인물들을 못생기게 그려놓았다고 평하는 사람도 있어서 호불호는 갈리는 것 같지만. 적어도 나는 이 덱의 풍부한 색감과 조금은 낡은 듯한 터치감이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여신 이야기'라는 테마를 조화롭게 표현하고 있어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마이너 아르카나는 각 수트를 네 가지 서로 다른 문화권에 배정한 것이 독특할 뿐 그 외에는 웨이트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데다 메이저 아르카나에 비해 화려함이나 섬세함이 대폭 감소해서 처음에는 약간 실망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사용하다보면 적응하게 된다. +기본적인 웨이트에 이미 익숙한 사람이라면 리딩할 때 더 편한 점이 플러스 요소가 될 수도.
가디스의 특성은 간단하면서 명료한 답을 내어주는 덱이라고 해야 할까. 단, 과정에 대한 설명은 생략되어 있다. 그 덕분에 처음에는 '??' 싶은 기분이 되지만 나중에는 그 메시지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소장하고 있던 시간만큼 아직 많이 친숙해지지는 못했지만 카드의 배경이 되는 신화에 대해 좀 더 본격적으로 알아보고 공부하면서 좀 더 작업해보고 싶은 덱 중 하나.
다 못 쓴 나머지 덱들은 다음 포스팅에서 계속 코멘트할 예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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